모처럼 한가하게 낮잠을 자다 갑자기 1984년 어느 날 후배와 가진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여름방학을 이용, 한국으로 인턴십을 나온 교포 2세, 김?? 군이었습니다. 성격도 무던하고, 일도 잘 하고, 우리 말은 어눌했지만 영어만큼은 참 잘했던 학생으로 기억납니다. 100여명 기자들 사이에서 귀염둥이 후배로 사랑을 받았죠.
저는 그 당시 편집국의 교정부에 있었고, 그는 편집부에 배치되었다가 국장의 보좌를 하는 자리(오늘날의 국차장 자리)로 옮겨 갔습니다. 그 때 국장은 인격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실력은 최고인 분으로 곽??이었습니다. 6.25때 통역장교를 했다던가 뭐 그래서 모르는 표현이 없었고, 쥬니어 기자들이 써놓은 글을 다듬는데도 귀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자 신문을 애독하는 학생들을 위해 특별판으로 만든 내지를 혼자서 집필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별명은 '크레믈린'이었는데 생긴 모습과 하는 행동과 그리고 늘 물고 있는 담배와 아주 잘 어울리는 별명 캐릭터였습니다.
김 군이 와서 일한지 한 달 반 쯤 되었을 땐가, 돌아갈 날짜가 예정되어 있어 점심을 사 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곽 국장님의 얘기가 나왔죠. 실력도 있고, 후배들도 잘 가르치고, 영자신문계의 거물이자 주옥같은 분 .. .뭐, 이런 정도의 칭찬으로 말 문을 연 것 같았는데, 그가 대뜸 "곽 국장놈, 아주 이상해요."라고 받더라구요.
그 소리를 듣고 저와 함께 있던 후배가 재빨리 아니, 높은 분을 부를 때는 '놈'이 아니라 '님'이라고 해야한다고 고쳐주었죠. 그런데도 여전히,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곽 국장은 국장놈이예요. 얼마나 나쁜 놈인지 정말 놀랐어요 (이 표현은 그의 한국말이 짧아서 이 정도였지, 농도는 훨씬 강했습니다. 아마 혀를 내두를 정도라든지, 넌더리가 난다든지 뭐 그런 정도였을 듯...). 나쁜 놈한테는 당연히 '놈'이라고 불러야죠."
왜 그러냐고 했더니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이런 저런 핍박받는 얘기를 했죠. 업무와 관련된 일, 그리고 수고비에 대한 지급방법, 그리고 OT를 했을 때 추가보상에 관한 부분... 이런 주제들이 생각이 나는데 인턴의 근무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열심히 일은 했는데 보상과 인정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지금 이 시점에서) 추론을 해 볼 뿐입니다.
그 어린 학생이 환갑이 다 된 분을 '놈'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게 무엇이었든, 저는 학생을 탓하기보다는 그 분에게 묻고자 합니다. "도대체, 당신은 김 군을 어떻게 대했길래 대선배로서 존경은 얻지 못할망정 '놈'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습니까?"
이제 그도 40 중반이 되었겠네요. 김?식인가 이름도 외우기 좋은 친구였는데, 23년전 얘기를 무슨 수로 지금 이 순간에 지억해내겠습니까.
혹시 내가 잘났다 하더라도 그 잘난 걸 미끼삼아 지위가 낮거나 덜 가졌거나 못 난 약자를 핍박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강자들이 양보하고, 잘 난 분들이 제 역할을 하고, 각자의 역할에 맞게 제 일을 하는 그런 사회가 '상생의 사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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