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적 글 읽고 쓰기

커뮤니케이션은 쌍방 수용의 원칙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태정 (泰亭) 2010. 8. 24. 21:22

최근 저는 한 강의에서 많고 많은 정의 중 "PR은 한 조직과 그를 둘러싼 공중들이 서로 쌍방에게 적응하게 도와준다 (Public relations helps an organization and its publics adapt mutually to each other.)"란 정의를 선택, 소개하였습니다. 미국의 PR전문가 모임인 PRSA가 1982년도에 총회를 하면서 확정하여 활용하고 있는 정의입니다.

 

이 정의가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어떤 커뮤니케이션이든 반드시 있어야 하는 쌍방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고, 또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란 PR 활동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이며, 한 조직에서 보낸 메시지가 미디어의 중간 필터링 과정을 거쳐 공중에게 전달되므로 그 과정에서 일부 조정될 소지가 있으므로 원래 그 조직에서 원한 온전한 메시지가 공중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않을 개연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필터링(전문적인 용어로는 gatekeeping 즉 문지기 활동)을 거쳤다 해도 기본적인 핵심 메시지는 그대로 전달될 것이라는 전제 혹은 기대감이 있어 그런 정보전달 노력은 쉴새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용자(공중)가 필터링을 거친 기사를 통해 한 조직의 소식을 듣는다 해도 관련 뉴스를 지속적으로 접하게 됨으로써 얻게 될 정보는 아무런 정보를 접할 수 없을 때보다는 공중의 판단력 제고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입장이 전혀 상반되는 어느 쌍방이 합의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없이 그냥 각자의 주장을 남발하는 것과, 생각과 입장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견을 좁히는 노력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과는 그 결과에 많은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쌍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쌍방의 입장을 존중하는 그런 당사자가 서로 쌍방 관계에 놓인다면, 그 자체로도 참 행복한 상황일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 가진 '진실'과 그 반대쪽이 가진 '사실'이 제 3자의 입장에서 보아 충돌이 났을 때 어느 쪽 손을 들어주어야 하는가를 가리기 위해서도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형식적으로 쌍방관계가 정립되고,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는 쌍방의 관계자가 있고, 그 쌍방의 주장을 심사하는 위원들도 있는 다자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쌍방간의 입장 차이를 좁혀가며 서로에게 '적응'해 가도록 하는 것은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질문도 답도 이뤄지지만 그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심문으로만 모든 상황을 명약관화하게 밝혀내기는 어려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진실을 가진 자는 약자이고, 사실을 주장하는 편은 강자일 경우 어떤 방식으로 '쌍방간에 대한 적응'이 일어나야 공정한 것일까요?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기 어렵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것이 현저한 사실이 진실을 이겨야 하는 걸까요? 

 

진실보다는 사실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결론인가 봅니다. 진실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 진실을 알리고자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설득을 하던 당사자가 다자간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거친 후에도 사실이 더 맞다고 인정되는 경우, 진실을 믿고 진실의 편에 섰던 당사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신기루를 쫒던 낙타꼴이 되어야만 하는 건가요? 쌍방의 '적응'에 대한 일말의 기대는 무너지고. 진실의 진실다움에 대해 실망해야 하는 건가요? 진실이기 때문에 사실만 가진 상대방이 진실을 알게 되면 사실을 버리고 진실을 택할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가 그 믿음이 무참히  무너지는 경험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상대방을 위해 서로 적응하는 것,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목표가 하나이고 같을 경우에야 쌍방의 관계가 적응대상이 되겠지만 그 쌍방이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경우 '적응'은 그야말로 기대난망인 것 같습니다.

 

너무나 멋진 PRSA의 정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그렇게 상호 감응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정의는 정의대로, 현실은 현실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진실이 무너지는 아픔을 감내하며 진실을 버려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사실의 힘을 인정하고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그런 타협으로 인해 서로 적응이 되면 더 좋았을 일마저 수포로 돌아가게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야만 쌍방 적응효과를 가진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활성화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