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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인생 - Under the Tuscan Sun

태정 (泰亭) 2010. 8. 29. 13:47

보통 작가라고 하면 소통의 대가요 메시지 전달의 전문가라 불릴 만할텐데요. 이 '투스카니의 태양'에 등장하는 주인공 프란시스는 이름있는 작가이지만 첫 결혼에서 실패하고 맙니다. 그녀의 남편도 작가였는데 무슨 문제로 일상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었던 걸까요? 더군다나 같은 업을 추구하는 두 사람이 함께 살면 여러가지로 좋을 것 같은데, 왜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새로운 삶을 찾아야 했을까요? 작가의 소통은 가정이 아니라 사회를 향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요?

 

 프란시스의 서평을 듣고 새로운 삶을 찾으면서 책을 내게 된 한 사내로부터 영화는 시작됩니다. 프란시스는 훌륭한 작가에 빈틈없는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지금 프렌치 키스를 할 수 있을까요?" 라며 달려가는 그 남자한테 왼손 약지의 반지를 보여주며 "난 결혼한 사람이예요"라고 우아하게 거절하며 허깅으로 인사를 받아주던 그의 모습은 참 평화롭고 인자하고 여성스런 풍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평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다른 한 사내로부터 당신이 내 책의 내용에 대해 비판할 그런 자격이 있느냐고 쏘아댑니다. "teen age fantasy"에 묻혀 인생을 즐기고 있는 그런 사람에 대해 수용하지 못한 것 같은데, 너나 잘 하세요...라는 비난을 쏟아 냅니다. 그에 대해 힘들지만 그런 작가의 길, 비평가의 길을 지속할 것이라 말합니다. 결국 열린 소통을 지향할 것이라는 것인데, 남편이 아니라 세상, 즉 밖을 향해 그렇게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방금 그가 한 말이 자신의 남편을 비꼬며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망연자실해진 프란시스. 그렇담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며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잘 나가는 결혼생활도 뭔가 중간에 끼게 되면 원활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 중 어느 일방의 외도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통의 단절이 되는 거죠...

 다시 인생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가란 말이냐.. 남편을 이해하고 그 허물을 벗어던질 수 있게 나보고 더 수양하라고? 그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얼토당토 않게 남편이 대리인인 변호사를 통해 이혼을 제안해 옵니다. 자신이 살고 있던 이 집에 그냥 눌러 살고 싶다고요. 이유는? 새로 같이 살게 될 여자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죠. 아니 그럼 아이 딸린 여성을 내 대신 좋아하게 되었다는 거지.. 하면서 모든 희망을 던져버립니다. 자신이 떠나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거죠. 그런데 아쉽게도 이 과정에 남편은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식으로든 직접 소통을 해야할 터인데, 영화의 설정상 더 무게있는 비통감을 주기 위한 일환이었겠죠.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불러 내 물건 어떤 것을 실어나가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은 모든 것을 있던 그대로 남기고 자기 책이 든 박스 세 개만 센터를 통해 옮깁니다. 그녀는 마지막 유산으로 유리화병 하나만 달랑 가지고 집을 나옵니다. 정들었던 거실의 이곳저곳에 작별을 고합니다. 화병에서 떨어지는 물이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갈 것은 가고 있을 것은 있게 한다... 어쩌면 가장 철저한 과거와의 단절, 최고의 무언 소통.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면 과연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냉정하게  돌아섭니다. 

 새로 거처를 마련한 후 방에 들어와 이게 내 집이란 말인가 라는 한탄을 쏟으며 바닥에 쓰러지고 맙니다. 그 뒷모습이 얼마나 애처롭던지...

 그래도 친구들이 있어 인생은 살 만한가 봅니다. 뭐든 시작과 끝은 재미있게 보내야 한다며 프란시스를 초대하여 새롭게 찾아온 자유에 건배를 합니다. 자기들이 가려 했던 투스카니로의 여행 티켓을 과감하게 프란시스에게 선물합니다. 이탈리아로 가서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늬 내면에 귀기울이다 오라는 말과 함께. 한 세상의 끝, 새로운 세상으로의 탈바꿈을 한 첫 발이라고나 할까요. 자신과의 소통도 무엇보다 중요한데, 상황논리에 밀려 자신과의 대화를 게을리 하다 보면 결국엔 후회가 남겠죠. 뭐든 한 발 앞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부부사이가 좋을 때도 나름대로의 자유는 만끽할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시작과 끝을 하나의 의식처럼 치뤄야 하는 것은 없어도 될 인생의 덤 아닐까요?

 투스카니로의 여행 패키지는 'Gay & Away'라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위에 나온 두 친구가 부부랍니다. 태양아래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할 정도의 눈부신 풍광을 자랑하는 투스카니에서 우연히 매물로 나온 브로마솔레라는 300년 정도된 고가에 필이 꽂힌 프란시스가 황급히 버스를 세우고 이 집으로 들어갑니다. 마침 매매 흥정이 되고 있었는데 앞서 진행되던 흥정에 두 배를 주겠다고 해서 흥정이 마무리되나 했지만 그집 종부 할머니의 협상 기술이 대단하더라구요. 두 팀이 와서 계속 관심을 보이며 나 달라고 졸라대니까 아예 안팔겠다고 버팁니다. 마침 집안에 있던 비둘기가 날아 가면서 프란시스의 이마에 똥을 갈기게 되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것이 아주 좋은 징조인 모양입니다. 그 할머니,  이제야 임자를 만났다며 선뜻 집을 프란시스에게 넘깁니다. 

 투스카니의 프리마돈나, 자유스런 영혼의 소유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이 세상의 많은 흐름에 몸을 맡기고 접하다 보면 결국 그 중에 당신한테 가장 어울리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당신에게 찾아올 것이라는 예언 아닌 충고를 합니다. 그러나, 프란시스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다움을 잃지 않는 엄청 곧고 당당한 여성입니다.

 운명적인 사랑은 언제라도 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 현상이죠. 길을 가다 여러 남자들로부터 스토킹을 당하고 있던 프란시스에게 도움을 준 멋쟁이 이탈리아 청년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마르첼로라는 이 사나이, "당신의 그 아름다운 두 눈동자 속에서 수영을 하고 싶어요"라는 사랑 고백을 합니다. 웃음을 참지 못한 프란시스 왈, 그런 멘트가 전형적인 이탈리아 남자들의 여자 꼬시기 멘트라면서요 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집니다. 진심을 다해 말한 이 남자에게 그런 말은 참 어이없는 대꾸였겠죠...

 잠시 후 자신의 말을 취소하고 오늘 자기와 같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말을 한 프란시스(프란체스카)에게 "오늘 나랑 같이 자자는 말이냐?"며 정색을 하고 쳐다봅니다. 속으로야 쾌재를 불렀겠지만, 이 장면 장면을 보다 보면 허투루 하는 농담이 결코 아닌 것으로 들립니다. 일말의 긴장감마저 돌죠... 멋쩍어진 프란체스카, 할말이 없어 빤히 마르첼로의 얼굴을 쳐다 봅니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미국 여자들이 그런 식으로 자기들한테 접근한다고 알고 있다며 좀전에 들었던 말을 되갚아 줍니다. 소통이란 주는 만큼 받는다는 상대성 원리가 적용되는 거죠?! 하지만, 아직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사이는 아닙니다^^

 마르첼로의 이 말은 작업의 정석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합니다. 헤프게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는 고귀한 사랑의 감정 만큼 아름다운 여성의 간절한 소망으로 받아 들이면서 그런 요청으로 날 영예롭게 해줘 너무나 감사하다고 합니다. 게임 끝난 것이 아닐까요? 너무나 아름다운 커플 탄생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 그 두가지를 지금 같이 생각할 여유는 없을 것입니다...

 성심을 다해 당신을 사랑해드리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살았던 프란체스카에세 마르첼로의 이 말은 사막의 오아시스가 됩니다. 온전한 사랑의 감정과 사랑의 행위는 프란체스카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 줍니다. 소통은 대화고, 소통은 사랑이며, 소통은 미래입니다. 두 사람의 멋진 사랑의 시작에 건배!!

 마르첼로의 집에서 내려다 본 동네 풍경입니다. 그리스의 산토리니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결실을 봐야 할 그 시각에 무심하게도 오늘의 투스카니 삶을 있게 해준 친구가 통보도 없이 들이 닥칩니다. 이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프란시스는 어림 짐작조차 하지 못하죠... 그저 친구가 반갑고 반가울 뿐입니다. 

 이렇게 마르첼로를 만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투스카니의 태양은 자연을 아름답게 숙성시킵니다.

 "내가 당신을 보고 싶어 여러 번 시도를 했는데 번번이 어긋났네요, 마르첼로. 그동안 잘 있었어요?"

 이미 남의 남자가 되어버린 마르첼로, 위로 아닌 위로로 프란체스카를 달랩니다. 정말 미안하게 되었다고 진심어린 사과를 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어긋난 사랑에게 미안하고 사과한들 상대방에게 생긴 상처가 아물 수 있을까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프란체스카, 말도 제대로 안나오고 숨도 칵칵 막힙니다. 요새 같이 핸드폰이라도 있었다면 만나지 못하게 된 이유라도 전달하며 소통을 통해 두 사람의 앞날을 설계할 수 있었을텐데요... 사랑은 가까이 있으나 멀리 있으나 확인이 필요합니다. 한 한 달 정도 못만난 사이에 얼토당토 않은 남한테 빼앗겨버린 사랑 사랑 내 사랑.. 후회해도 소용없는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프란체스카, 꼭 당신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나타날거야"는 위로는 위로일까요? 두 번 죽이는 말일까요?

 

소통은 언제라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필요한 소통은 지금 바로 이 시간 이 장소에서 해야 해 라고 믿는 것의 차이 만큼 단절의 거리는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