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정루 탄금대

삶의 전환기? 인생의 기로?

태정 (泰亭) 2010. 7. 23. 18:37

누군 삶의 전환기가 마련되었다고도 하고, 누군 인생의 기로에 섰다고도 한다.

같은 상황을 놓고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는 거다.

한 상황을 두고 두 심정이 되는 거다. 같은 사람이 두 심정이 될 수도 있고, 두 다른 사람이 서로 각각의 심정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는 갈림길이고, 다른 하나는 전환기일까?

 

청년기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블라인드 사이드'에서 처럼 훌륭한 복지가를 만나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면 그건 분명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 것일 게다.

'코치 카터'에서 처럼 리더십이 뛰어나고 투철한 사명의식을 가진 코치를 만난 운동선수들이 모두 공부도 잘 하면서 농구선수로도 대성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면 그건 분명 엄청난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 거다.

훌륭한 엄마 역을 한 샌드라 불록이나 색다른 코치로서의 면모를 보여 준 Mrgan Freeman을 만난 그들의 행운이자 복인 것이다.

 

그런데, 인생의 기로에 섰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한 인생도 있다.

나이 50이 넘어 어느 날 갑자기 마른 하늘에 번개 맞듯 일자리에서 쫓겨난는 경우다. 이걸 두고 전환기라 해야 할지 기로라고 해야 할지는 순전히 앞길이 순탄하게 열릴 것이냐 말것이냐에 달려 있다. 신문사들이 전개하고 있는 잡월드니 취업지원이니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다른 나라 뉴스처럼 들릴 때도 있었는데 이 순간 그 서비스를 받아야 하나 말아냐 하나 고민하고 있다면 그건 분명 인생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리라.

 

오늘 오후에 우연히 실화에 바탕을 둔, 아카데미상 수상에 빛나는 '블라인드 사이드'라는 영화를 보았다. 아이와 와이프와 함께. 감동은 나누었고, 아이와 비슷한 상황에 대해 감정도 교류하면서 집중해서 보았다. 와이프도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데 애쓰는 극중 어머니의 역할에 대해 아이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보았다. 아이는 제법 여러 군데에서 감동받기도 하고 헤헤거리기도 하고 장면을 가리키기도 하면서 감흥을 가졌다. 누군 저버리기는 쉬워 하면서 돌아 보지도 않는데 누군 그 아픔마저 내것으로 순화시키면서 자신이 몰랐던 세계에 대해 눈떠 가면서 온전히 자기 가족으로 맞아 주고, 가족의 일원으로 변화시켜 나간다. 그 힘은 사람의 마음과 자세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 차이의 힘은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도 중요하고 의지도 강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변화의 경로는 변화를 일으키겠다고 결심을 먼저 한 당사자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누가 무엇을 할지 결심을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 결심이 깨지지 않는 한 상대방의 변화를 위해 끝없이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 변신의 주인공은 버려진 흑인 아이 마이클이다. 순둥이 고릴라, 딱 어울리는 별명이다. 저런 고릴라 한 마리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심성이 착했고, 흑인 세계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인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변화와 변신이 더 잘 이뤄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리 앤의 가슴에 파고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화의 과정은 상호적이었고, 커뮤니케이선이나 배려, 공유 등이 눈에 돋보였다. 생각을 들어주고, 말을 걸어주고, 고민을 공유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주고, 격의 없는 가족애를 팡팡 보냄으로써 마이클의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내리는 것이다.  

 

이런 가족애가 담긴 영화가 우리날시장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들은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중,고등 학생들에게 모두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상문도 시청평도 필요없다. 그냥 느끼게 하면 된다. 심성을 통해 인성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지, 가족은 누구인지, 친구는 누구인지, 내 삶은 제대로 꾸려가고 있는 것인지, 내 장래에 대해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삶의 전환기에 와있다고 믿는 나도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기로'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내 스스로는 '전환기'라고 보려 한다. 새로운 시각으로 남은 인생을 볼 수 없다면 어쩜 과거의 삶 속에서 내 모습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할 것이고, 한 두 가지의 평가요소를 통해 나를 '루저'로 폄하하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루저 아닌 루저. 때늦게 찾아왔다고 해야 할지, 너무 빨리 찾아 왔다고 해야할지... 누군 그래도 지금 그런 변화가 찾아 온 것이 오히려 네겐 더 잘된 것이라 한다. 누군 마음 편하게 먹으라고 한다. 그 만큼 쉬지 않고 일했으면 쉴 권릭 있다고도 한다. 느긋하게 마음 먹고 건강을 챙기랜다. 먹는 것 좀 줄이면 되지 뭐 걱정할 것 있냐고 한다. 살 방법은 얼마든 있다고들 얘기한다. 결국 그들의 말 - 물론 친구고 지인이고 가까운 사이들이지만 그들은 결국 제3자 일 수밖에 없다 - 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살아갈 방법은 있을 것이니 현 상황을 느긋이 바라보고 즐기면서 여유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바라보는 방법만 달리 한다고 해서 '기로'가 '전환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전환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서 색다른 대안, 아니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꿩도 잡고 알도 먹는' 환상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높은 연봉이지만 몇 년 안 남은 정년이 곧 다가올 인생을 추구하면서 오기다려도 바로 오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그런 기회를 마냥 기다려야 할 것이냐, 겨우 연명할 정도의 생활비 수준을 받을지라도 정년없이 살아있는 동안 힘쓸 기운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그런 일을 받아들여야 하느냐... 이거야말로 저 같은 범인에게는 인생의 기로 아니면 전환기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