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 행 (주례사)
신랑 ○○○ 신부 ○○○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신부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늠름하고 믿음직한 신랑 앞으로 나아 와 함께 선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상상력이 결집된 ‘인간관계의 원형原型’이라고 불리는 그리스신화에 의하면, 역사상 최초의 주례는 제우스Zeus신이었고, 최초의 예식장은 영웅 펠레우스Peleus와 여신 테티스Thetis의 결혼식이 열린 올림포스Olympos산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제우스가 아니지만, 오늘의 신랑 신부는 펠레우스와 테티스에 못지 않은 훌륭한 인재요 아름다운 재원才媛이며 이 자리 또한 올림포스산처럼 신비롭고 뜻 깊은 자리라고 여기면서, 결혼과 삶의 길을 몇 걸음 앞서 걸어온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축하와 함께 몇 마디 당부의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결혼은 또 하나의 탄생입니다. 신랑 신부는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 때로부터 오늘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각기 하나의 독립한 인격체로 훌륭히 성장하고 성실하게 교육받으면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두 사람이 하나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제2의 탄생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독립한 인격을 주장하기보다 서로에게 기꺼이 종속從屬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그것이 결혼을 이루는 사랑입니다. 결혼은 신랑 신부 각자의 권리를 반半으로 줄이는 대신, 책임을 두 배로 증가시킵니다. 권리보다 책임이 더 많은 것이 결혼입니다. 결혼은 연애와 다릅니다. 연애가 가슴속 설레는 언어들로 꿈결 같은 열정을 속삭이는 관계라면, 결혼은 거친 바람 모질게 불어오는 삶의 광야에서 온갖 애환哀歡의 파도를 함께 헤쳐 가는 책임과 인내의 여정旅程입니다.
연애할 때는 꿈을 꾸지만, 결혼할 때는 꿈을 깨야 합니다. 결혼은 소설이 아니라 생생한 일상이요 엄숙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양 사람들처럼 ‘my husband, my wife, 내 남편, 내 아내’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남편, 우리 아내’라고 하지요.
어찌 보면 참 우스운 말로 들리지만, 결혼의 뜻에 매우 잘 어울리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나와 너’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만이 있습니다. 신랑 신부는 여러 면에서 서로 다릅니다. 성격이 다르고, 성장환경이 다르고, 취미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의 차이를 아낄 줄 아는 것이 사랑입니다. 나와 다르기에 너를 애타게 그리워 하고, 서로 차이가 있기에 더 깊이 배려해 주고 싶은 것이 사랑의 관계입니다.
신랑 신부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 미움이나 갈등의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고 더 튼실하게 이해해가는 소중한 사랑의 계기契機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비좁은 공간에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붙을 듯 가까이 서 있으면, 햇빛과 수분과 영양분의 결핍으로 그 중 한 그루는 말라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무들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습니다. 한 쪽이 말라죽기 전에 두 나무가 서로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서 아예 한 몸으로 붙어버립니다.
그리고는 홀로였을 때보다 훨씬 더 큰 나무로 자라납니다. 연리지連理枝라고 하는 현상인데, 이렇게 부부처럼 한 몸이 된 연리목連理木을 ‘사랑나무’라고 부릅니다.
연리목은 예전에 지녔던 각자의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흰 꽃이 피었던 가지에는 흰 꽃을, 붉은 꽃이 피었던 가지에는 붉은 꽃을 그대로 피워냅니다.
각기 제 색깔만을 고집하지 않고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평화롭게 한 몸으로 살아가는 이채롭고 신비한 자연의 조화입니다.
유전자 과학이 아무리 놀랍게 발전한다 해도, 연리지의 흉내를 비슷하게 낼 수는 있을지언정 연리목의 사랑까지 흉내 낼 수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이제 그 연리지의 한쪽 나무인 신랑에게 당부합니다. 한 남성의 삶은 어머니와 아내, 그 두 명의 여성 사이에 자리 잡습니다. 어머니는 신랑이 세상에 태어나 맨 처음 만난 ‘최초의 2인칭’이고, 아내는 이제부터 생명의 마지막 호흡을 거두는 순간까지 일생을 함께 할 ‘최후의 2인칭’입니다.
신랑은 결혼의 안락함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최후의 2인칭’인 신부에게 충실해야 합니다. 밖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도 제 가족, 자기 아내에게서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신랑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신부로부터 인정을 받고 아내에게서 신뢰받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신뢰를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려도, 신뢰를 잃는 데는 한 순간으로 족합니다.
아내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남편은 그날로 끝장입니다.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웬만큼 살아봐서 잘 압니다. 그러나 저희 부부 얘기는 아닙니다.
인류최초의 신랑인 아담은 신부인 이브에게 ‘내 뼈 중의 뼈’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신랑은 명심하십시오.
아담은 흙으로 만들었지만, 이브는 뼈로 만들었습니다. 뼈는 흙보다 훨씬 강합니다. 신부에게 함부로 덤벼 들었다가는 혼쭐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아슬아슬합니다. 제 경험담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탈무드에 “하나님은 아내의 눈물방울 숫자를 세고 계신다”는 두려운 말이 있습니다. 신부의 얼굴에 작은 웃음꽃 한 송이를 피워주기 위해서 신랑은 몇 날 몇 밤이고 속으로 피눈물을 삼킬 줄 알아야 합니다. 왕국의 평화는 수십, 수백만의 군사들이 지켜 내지만, 가정의 평화는 오직 신랑 한 사람의 굳은 책임감만이 성실하게 지켜낼 수 있습니다.
신록新綠의 숲속에 핀 한 송이 봄꽃처럼 화사한 신부의 아름다움에 경탄의 찬사를 보내면서 이 좋은 날, 신부에게도 어려운 말 한 마디를 하겠습니다. 신부는 바람직한 남편 상像을 원하기 전에 먼저 바람직한 아내 상을 만들어 가기 바랍니다.
결혼의 여정에는 평탄한 길만 있지 않습니다. 거칠고 험한 길, 멀고도 굽이진 길이 수도 없이 널려있습니다.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남성들이 이성적 문명의 세계를 만들어 왔다면, 여성들은 감성적 문화의 역사를 창조해왔습니다. 남성들이 산과 들판을 휘저으며 수렵, 벌채, 남획으로 생명의 피를 흘리고 생태계生態界에 상처를 입힐 때, 여성들은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텃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명과 자연을 보듬어 안았습니다.
남성들은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가정을 만들었습니다. 가정의 중심은 여성입니다. 아버지가 가장家長이라면, 어머니는 가심家心입니다.
제가 지어낸 말이지만, 저는 가장이라는 말보다는 가심, 가정의 중심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거대한 성곽은 수천 수만의 장정들이 지어 올리지만, 가정은 한 여성의 알뜰하고 섬세한 사랑의 손길만이 오롯이 지어 올릴 수 있습니다.
신랑의 가슴에 자신自信과 용기의 숨결 한 자락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서 신부는 남몰래 혀를 깨물며 진한 아픔을 홀로 참아내야 할 때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신랑이 세상의 차디 찬 냉기 속에서 고독과 좌절을 겪고 집에 돌아와 고단한 몸을 뉠 때, 그 고독을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배려 - 그것이 신부의 자리입니다.

사람의 귀는 외이外耳, 중이中耳, 내이內耳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체해부도에는 나오지 않는 귀가 또 하나 있습니다.
상대방이 차마 말로 옮기지 못하고 속 깊이 담아두고 있는 생각을 헤아릴 줄 아는 귀, 마음의 귀, 심이心耳가 있습니다.
신랑 신부는 외이 중이 내이 뿐 아니라 심이를 서로에게 열 수 있어야 합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뜻을 알아 채고,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읽어내며,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는 경지에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 자신이 늘 아프게 반성하는 대목입니다.
신랑은 국내외의 유수한 대학에서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고 ○○자격을 취득한 후 현재 ○○사의 마케팅과 전략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인재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대학에서 ○○을 전공한 뒤 10여 년 간 ○○로 일하고 있는 재원입니다. 지성과 덕성을 두루 갖춘 두 사람이 앞으로 서로에게 심이, 마음의 귀를 열어가는 일에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또한 신랑 신부는 지금까지 쌓아올린 학력과 경력에 만족하지 말고, 이제부터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 가정을 인생의 마지막 학교로 삼아, 그 안에서 서로에게 훌륭한 스승이 되고 또 서로에게 성실한 제자가 되어가기 바랍니다.
이제는 양가의 어른들과 이 복된 결혼의 성실한 증인들로 참석해주신 친지, 친구, 하객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신랑 신부는 각기 고립된 존재로 서로를 만난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부모님과 더불어, 또 각자의 친지, 친구들과 함께 서로를 만난 것입니다. 신랑의 어버이는 이제 신부의 어버이요, 신부의 부모님은 영원토록 신랑의 부모님이며, 우리 모두는 신랑 신부 두 사람의 친지요 친구들입니다. 양가의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하객 여러분께서는 오늘부터 신랑 신부가 함께 하는 삶의 길에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변함없이 동참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주례의 말을 맺으면서, 오늘부터 일생을 함께 할 신랑 신부에게 이난수 시인이 쓴 ‘동행’이라는 시를 축시祝詩로 드립니다.
우리가 / 일생을 동행한다는 것은 / 나를 비우는 일입니다 비우고 / 또 비워서 / 그대를 넘치게 받드는 일입니다 넉넉히 / 그대를 받들어 / 그윽이 바라보면 미소가 / 때로는 눈물이 되어 / 축축이 젖는 가슴 우리가 / 일생을 동행한다는 것은 / 나를 완전히 비워 그대의 영혼에 / 거울 되어 비치는 일입니다.
이제부터 두 사람이 동행하는 길은 멀고도 아득한 길입니다. 혼자 걸어갈 수 없습니다. 급히 뛰어갈 수도 없습니다.
비록 느리더라도 서로 진득이 기다려주며, 때로는 곧은 길 마다하고 굽은 길 에둘러 가면서,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밀어주며 인생의 먼 길을 오래도록 함께 걸어가는 아름다운 동행이 되십시오.
미소가 눈물이 되고 눈물이 다시 미소가 되는 그 신비를 향해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 가면서 스스로를 완전히 비워 가노라면, 언젠가는 서로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자녀들을 가능한 대로 많이 많이 낳아서 모두 반듯하고 튼실하게 키워내는 훌륭한 어버이가 되기 바랍니다.
먼 길을 떠나기 전, 기氣를 모으고 호흡을 가다듬는 긴장된 마음으로 이 싱그러운 날 저녁의 순결한 서약을 굳게 다지면서, 지금의 초심 初心 그대로 평생을 함께 달려가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0년 0월 00일
主禮 李 宇根 변호사
법무법인 충정忠正 대표 前 서울중앙지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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