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정루 탄금대

가자, 산토리니로!

태정 (泰亭) 2010. 1. 21. 22:10

오늘은 15년 전인 1995년에 만혼을 한 저의 결혼기념일입니다.

생전 몰랐던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식구를 늘리고, 재산을 가꾸고, 미래를 함께 설계한다는 것이 참 즐겁고 잼있고 행복한 삶이란 것을 느낍니다.

싸우고 울고 욕하고 고함치는 적도 있지만 그게 결혼의 재미라면 너무 과장일까요?

 

10년을 기념하면서는 싱가포르, 15년을 기념해서는 상해.... 웬지 성에 차지 않는 이벤트였지만 그래도 뭔가 색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할 때 바다를 건너갈 형편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저의 성에 차지 않는 이런 프로그램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 식구들에게는 미안합니다. 좀 더 산뜻하고, 별다르고, 예상을 뛰어넘는 럭셔리 이벤트로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죠... 

 

하지만 삶이 꼭 색다른 것, 톡톡 튀는 것, 범상하지 않은 것,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로만 이뤄지게 되면 그 또한 얼마나 고달프고 돈 많이 들고 피곤한 삶이 되겠습니까? 적당한 재미와 너무 과하지 않은 복과 인생을 즐길만한 건강과 어던 얘기도 자연스럽게 주고 받을 수 있는 상식과 웬만한 실수와 무능 쯤은 가족의 이름으로 따사롭게 감싸 안을 수 있는 그 정도면 충분한 행복 아닐까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공부를 못한다고 서로 아웅다웅 해봐야 결국은 서로의 가슴에 언잖은 기분과 허전한 상처만 남기지 못하겠죠.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는 지혜를 배워야 하는데 아직도 그게 쉽지 않으니 참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를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을 자식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낙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다그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다그칠 수도 없는, 참 갈팡질팡하는 상황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라고 하는 인생선배님들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분명 때를 기다리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주어야 하는데, 도를 완전이 닦기 전에는 그저 아웅다웅하는 그림밖에 그릴 수 없을 듯 합니다.   

 

이제 앞으로 5년 후면 아이가 대학을 가게 됩니다. 물론 잘 해야 가는 거죠. 하지만 비록 대학을 가지 못한다 해도 그동안 여러가지를 희생하며 노력했을 아이를 위해, 그리고 뒷바라지에 모든 정성을 다 쏟았을 아내의 노고에 상을 내리기 위해서라도 뭔가 좋은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침, 2015년 1월이면 결혼 20주년이 되기도 하니 뭔가 정말 색다른 프로그램을 돌릴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1월쯤이면 아이의 대학진학 성패도 판가름나 있겠죠. 결과야 어쨋든 과정을 돌아보는 세리머니 정도는 하는 것이 아버지된, 지아비된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약간 아쉬움을 남기고, 5년 후를 기약하며 다음 그림으로 그 목표를 세워봅니다. 가자, 산토리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