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진성국민(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6살에 두 살 위인 형을 따라 같이 1학년에 입학했죠. 당시 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20분은 족히 걸리는 약 2km였습니다. 키가 크고 민첩하게 생긴 바드나무 길을 지나 이 밭 저 밭을 지나 오솔길을 걷다 보면 큰 자갈돌이 마구 굴러다니는 국도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땐가는 넘어져 무릎팍을 크게 깬 적도 있죠.
좌우당간 등교길을 이렇게 장황하게 쓰는 이유는 길이 너무 멀다 보니 슬슬 꾀를 부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어린 나이에 귀신 하면 제일 무서운 것 중 하나인데, 학교 근처 한 200미터 못미처에 큰 가로수 (길가에 있어서 가로수란 이름이지 실제 크기로 보면 마을의 귀신목 같이 우거진 나무)가 있었는데,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꼭 귀신이 어딘가에서 나올 듯한 그런 분위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 뒤 100미터 쯤 떨어진 산에는 상여집이 있어 늘 상여에 달았던 조화가 보인다거나 상여를 장식했던 실이나 오색 종이 줄들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아름답게 볼 수는 없는 주변 환경이었죠.
그런 것도 그냥 지나치면 암것도 아닌데 구실을 삼자면 대단한 꺼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열심히 학교를 다닌 덕분에 선생님들이 나를 번쩍 안아 교탁 위에 올려 놓고 옷을 잘 입었다느니 깨끗해 보인다느니 하며 칭찬도 하고 아이들에게 따라 하라고 권했던 그런 기억이 떠오릅니다. 특히, 형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이옥남 선생님은 저와 한 반이었던 이아무개 (이름을 잊었네요) 친구의 엄마라 특히 저를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설사를 했을 땐 선생님 댁으로 데려가 씻겨 주고 바지도 새로 갈아입혀 주셨죠.
지금 이런 기억이 그 여섯살 1학년 때인지, 그 다음에 새로 입학해서 다닌 7살 때인지 잘 기억이 안납니다만, 학교에 다니며 이런 기억을 가진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제가 선생님들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으면서도 한 석달 다닌 다음에는 꾀가 났는지 엄마한테 다리가 아프다느니 귀신나무가 무섭다느니 하며 핑게를 대기 시작했답니다. 형님 따라 강남 갔다가 뭐 별볼 일 없다 싶었겠죠. 그런데 그 이후 정확하게 언제어떻게 학교를 안가게 되었는지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들리는 말로 석달 정도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녔다면 학번도 하나 더 빠르고 사회 진출도 더 빨라 돈도 더 많이 벌었을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 그런 감상이 드는 것이 당연하겠죠. 순수한 마음과 호기심으로 다녔을 그 어린 마음이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생의 에피소드거리가 될 수 있는 소재가 되었으니 43년 전을 돌이켜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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