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정루 탄금대

가디언 - The Guardian

태정 (泰亭) 2006. 11. 19. 00:25

오늘 아들과 같이 '가디언'을 보았습니다.

 

사나이의 우정과 일로 인해 생기는 가정의 불화, 그리고 진정한 프로페셔녈리즘의 발현, 그리고 임무를 가진 집단의 성실하고 헌신적인 활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 뭐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그런 내용이 담긴 영화였습니다. 그 목적에서 보면, 오늘 영화는 매우 적절했고, 아들도 약간 울었노라고 했습니다. 저도 몇 군데 눈물을 글썽이기는 했었는데, 간신히 참았었습니다. 장엄한 서사시적 구도를 가지고, 어디에선가 본 듯한 그런 시나리오를 가지고, 나도 저런 상황이라면 ... 하는 대입이 가능한 그런 상황으로 끝까지 콘티가 짜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였습니다. 

 

미국 해안경비대의 살아있는 전설, 벤 랜달(케빈 코스트너 분)이 현장 구조 작업에서 최선을 다했으나 동료의 목숨을 지키지 못해 자책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상관이 마음도 쉴 겸 베테랑 경력을 활용하여 후배도 양성할 겸 구조대원들을 양성하는 USCG (The U.S. Coast Guard) A School의 Senior Chief (책임교관)으로 갈 것을 거의 명령조로 추천하여, 결국 그리로 발령을 받게 됩니다.

 

내 교육방식이 잘못되었다 해도 난 내가 경험한 것을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며, 지금까지 그 누구도 교육현장에서 적용해 본 적이 없는 강한 교육코스를 실시합니다. 베테랑이 현장에서 경험한 것 중 가장 큰 발견은 교육 기간 중에 전범처럼 전수되는 탁상교육과 현실에는 커다란 갭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갭을 줄이는 것이 구조대원들의 인명피해도 줄이는 길일 뿐 아니라 조난당한 사람들의 최대한 구조에도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생각을 반영한 지옥훈련을 견디지 못하거나 거듭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자퇴 또는 퇴학만이 있습니다. 늘 그렇듯, 이렇에 여러 명이 모이는 영화에는 잘 난 한 놈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됩니다.

 

고등학교 1,2학년 때 이미 수영선수로 이름을 날린 피셔 (애쉬톤 컬쳐 분)는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만감(자신감을 넘어 자만감), 그리고 지금까지 기록된 모든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야 말겠다는 허황되지만 주인공 다운 그런 자신감을 가진 학생으로 나옵니다. 물론 뛰어난 자질을 가졌지만, 그것 때문에 벤의 시선을 끌지는 못합니다. 아니, 벤은 오히려 동량으로 키우기 위해 일부러 더 가혹하게 훈련을 합니다. 피셔를 못살게 구는 상관처럼 비치기도 합니다. 머릿 속에 배어 있을지도 모를 엘리트 정신(elitism - 자기만 날났다고 착각하거나 늘 1등만 해서 자기 아닌 남들을 모두 바보나 등신 취급하는 막되먹은 부류 - 필자 주)을 일깨워주고 보다 현실적인 구조대원이 되게끔 하기 위한 일종의 배려였습니다. 그런 교육을 위해 벤은 피셔의 과거에 대해 세밀한 조사를 하게 되고, 피셔가 왜 가끔 빗나가는 행동들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피셔도 물론, 이런 섬세한 배려를 하는 벤을 진정한 사부로 맞아들이게 되죠. 그리하여, 환상의 사제 커플이 맺어지게 되는 늘 있는 이야기의 일부가 됩니다.

 

해안구조대가 지향하는 지상의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팀워크를 통해 팀을 위주로, 팀 단위로 구조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인명을 구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수영도 뛰어나고 생각도 뛰어난 리더감이 필요했는데, 벤은 바로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피셔를 발견하고 그를 그의 수제자로 키우기 위해 일부러 더 악랄한 교습을 한 것이었습니다. 같은 교습소 내에서도 경험의 충돌까지 빚어내며 아집을 꺾지 않는 'USCG의 살아있는 전설' 벤의 교육방식은 혹독했지만, 효과를 보았습니다. 자퇴, 퇴학 등을 포함 7명의 낙오자를 낳지만, 결국 그들은 자랑스런 뱃지를 달게 되는 것입니다.

 

벤은 물론 초기에는 교관을 앝본 몇몇 학생들로부터 지탄을 받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런 놈이 있을 수 없다, 자기보다 훨씬 못한 놈이 단지 조금 더 빨리 태어나 교관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잘했다는 칭찬 한 마디 안하고 무조건 자기탓만 하냐고 불평을 하던 피셔도 교관님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는데 사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영화 중반 이후부터는 그 두사람이 한 팀으로 뭔가를 보여줍니다. 교관을 앞서는 학생, 뭐 이런 것도 종종 나오죠.

 

훈련 중에 일부러 기록의 중요성이란 무의미하다는 것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기록게임을 합니다. 피셔가 그동안 벤이 세웠던 모든 기록을 깹니다. 그리곤, 우쭐하여 동네 바에 가서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바의 여주인은 낡은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자네가 그 모든 기록을 깼더라도 한 가지 깨지 못할 기록이 있다며 얘기를 합니다. 구조대원으로서 벤이 세운 기록 그 자체도 어마어마하지만, 실제 지역 주민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의 희생정신에 대한 흠모가 대단했던 것입니다. 

 

그런 새로운 사실을 접하면서, 피셔는 교관의 기록을 반드시 깨고 말리라는 일념으로 생활합니다. 그러나 이젠 존경심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선배님이 지금까지 구조한 인명이 도대체 몇 명이란 말씀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벤은 괘념치 않습니다. 그런 복선을 깔고 영화는 점점 흥미진진해집니다.

 

그러면서 피셔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자기모습을 보며 서로에게 감사하고 (이제 사제지간이 아니라 같은 동료로서) 또 다른 우정을 키워갑니다. 청출어람이 청어람. 이 말은 선배가 후배에게 느낄 수 있는 최대의 성취감이 아닐까 합니다. 자기보다 더 나은 아들을 만들고자 애쓰는 부모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종반부에 구조대원이 기록이 갖는 의미를 일깨워준 벤의 명답이 나옵니다. "정말 마지막까지 꼭 불어보고자 했던 질문 한 가지... 선배님은 몇명이나 구조하셨습니까?"  한참을 쳐다보던 벤, "Twenty-two."라고 답합니다. 순간 저는 2만2천명인가 보다 생각을 했죠. 그런데 "아니 겨우 22명? 200명도 아니고 22명이란 말이죠?"라고 경멸하듯 내뱉는 피셔의 대사가 나왔습니다.

 

"아니, 내 말은 내가 구하지 못한 인명의 수가 22명이라는 거다. 난 내가 구한 인명의 숫자 따윈 기억에 남겨두지 않아." 그리고는 자기 맘 속에 담아두고 있으면서 섣불리 표현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내가 내 자신에게 늘 묻는 것은, 그 험한 상황에서 왜 늘 나만 살아남는거냐는 거지. 왜? 하지만 그 답을 나도 가지고 있지 않아..." 여운을 남기는 대가의 말이었습니다. 결국, 자신도 누군가를 위해, 또는 더 큰 대의를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할 수 있다 ... 뭐, 이런 대의명분을 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벤은 피셔를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합니다. 간신히 위기에 처했던 피셔를 벤이 구조해 내서 구조헬기로 올라가는 도중에 두 사람을 지탱하고 있던 철제 로프가 점점 끊어져 나갑니다. 둘 모두를 튼튼하게 받쳐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벤은 결단을 합니다. 자기 한 몸을 희생하면 자신보다 더 나은 구조대원 하나를 살릴 수 있다는 사명감/의무감/희생정신/프로페셔널리즘을 발휘합니다. 100피트도 넘는 높이에서 파도가 용을 쓰는 물위로 몸을 던지는 것입니다. 영원한 이미지를 남기기 위한 영화적 기법이기는 하지만, 장엄한 희생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구조대원들이 안전하게 바다에 착지하기 위해서는 20피트 상공에서 뛰어내려야 하고, 완전군장을 한 채 50피트에서 뛰어내리면 바위에 부닥치는 느낌을 받게 되고, 80피트에서 뛰어내리게 되면 죽는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Vertical Limit에서 아들과 딸을 살리기 위해 로프를 끊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주인공들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결국 이렇게 희생한 벤 랜덜은 험난한 해난사고에서도 마지막까지 조난자를 지켜준다는 전설의 보호자가 되었다는 결말로 영화는 종영합니다. 그래서 영화제목도 "The Guardian"인 것입니다. 바다에서 무슨 일을 당했을 때 마치 거북이가 나타나 뭍에까지 데려다주었다는 전설(물론, 실제 그런 일도 있었죠)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런 가디언으로 영원히 바다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4학년인 아들이 그나마 남자로서 뭔가 뭉클한 감동을 받게 해 준 좋은 영화입니다. 아주 적은 부분을 옮긴 것에 불과하니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강추!

 

 

사족이지만, 두 가지 헐리웃 영화같지 않은 옥의 티가 보이더군요 (동태같은 제 눈에도 너무 과한 듯 ^^)

 

- 훈련 장면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여성 대원이 결국 졸업식에서 졸업 증서를 받았다는 것

- 벤이 마지막으로 자기희생을 한 후 거의 몇 주에 걸친 구조작업이 있었지만 발견되지 않다가 그가 떨어졌던 지점에 난파되어 있었던 배의 선장을 구하게 하였다는 장면 (좋게 생각하면 그런 것이 있어야 전설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