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회 우리문화사랑방 강좌의 제목입니다. 지난 20일 토요일에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www.rekor.or.kr)이 주관한 월례역사강좌인데요, 12년째 한 달도 빠짐없이 계속 열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매월 셋째 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장소는 시내 한국관광공사 지하 강당에서 열리더군요. 저는 한국의 재발견에 회원으로 가입한 이후 처음 가 본 강연이었는데, 100여분이 오셨습니다. 이미 오랫 동안 이 강연에 심취해 있는 분들로, 대부분 회원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날 강연은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실이라고 할 수 있는 승정원 관리들이 기록한 승정원일기에 나온 몇 가지의 사실을 바탕으로 조선시대의 국정운영 시스템이 어떻게 이뤄졌나를 살펴보았는데요... 강연은 국민대 이근호 연구교수(박사)가 맡아 하셨습니다. 1년 전에도 강의를 맡으셨던 모양입니다.
보통 우리가 최고의 기록문화로 알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사관들이 기록한 것으로 통 4천500만자 정도가적혀 있다는군요. 태조-순조까지 기록. 그런데 승정원 일기는 인조 때부터 기록을 시작했지만 총 글자 수는 2억 4천만자... 놀랍기만 합니다. 이 외에도 의궤 등 다양한 기록문화가 있었는데, 일제 강점 기간 동안 많이 훼손되어 그 전모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하니 참 안타깝기만 합니다. 하지만, 조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다양한 양태, 내용의 기록물이 남아 있다고 하네요.
여러가지 내용들이 전달되었지만 기억이 잘 안납니다. 핸드아웃을 받았긴 하지만 글로 풀기에는 저의 이해가 좀 부족합니다. 너무 오랫 동안 국사공부를 안햇더니 휴유증이 큽니다. 이 교수님의 말씀으로는 조선시대의 특징은 커뮤니케이션이 그나마 잘 이뤄졌다고 합니다. 영조대와의 경우 균역법 제정을 위해 7차례나 궁에서 나와 백성, 유생, 관리 들과 대화를 나눴답니다. 어떤 날은 오전 7시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옳고 그름, 더 낫고 못함을 판단하고 선택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5차례나 시전상인들과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고 합니다.
이 교수께서 내린 조선시대 국정운영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왕은 여론이 향방에 신경을 썼ㄷ. 기록을 무서워했다. 무시하면 폭군으로 기록되었다.
승정원일기는 비록이 아니라 수시로 열람이 가능했다. 모든 게 기록되니 모두 조심스러워 했다.
2. 대화와 타협이 국정의 중요 모티브가 되었다. 붕당간, 국왕과 신하간 의리가 조정되었다.
공론/여론이 매우 중시된 시대가 조선이다.
어쨋든 500년간 지속된 한 왕조의 성쇠가 열린 귀에 있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이런 모임을 이끌어가고 계신 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우리 역사에 대해 뭐든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홈페이지나 카페에 올리라고 하신 사회자님이 생각납니다.
저는 다음 달 20일에도 참석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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