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하기 참 힘들다"
국민하기 참 힘들다...
오늘 (2006년 9월 22일 금요일 오전 7시 57분경)) 아침 KBS 1 Radio의 일일 라디오 프로그램 담당자의 클로징 멘트였습니다. "요새 국민하기 참 힘든 세상입니다. 이래저래 그렇습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총에 몸답고 있던 어느 한 사람이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제3의 노조를 론칭하려 하고 있는데, 이 분은 초대석에서 "절대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재삼 강조하더군요. 호스트의 질문은, 다들 그렇게 말했지만 종국적인 목표는 다들 정계 진출로 마무리된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절대 그런 일 없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프로그램이 끝나게 되었는데, 거의 한숨 섞인 소리로 "국민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가정의 가장노릇 제대로 하기도 엄청 힘든 세상, 그리고 존경받는 주부 (엄마, 며느리....)되기도 그리 쉽지 않은 세상,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수신도 제대로 하기 어려워 헉헉거리고 있는데, 국민들을 보살피고 잘 살게 만들라고 권력과 제도를 위임한 국민들은 오히려 그 수임자들 때문에 안해도 될 고민과 걱정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이 별것이 아닌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조금만 잘 살면 번 돈에 대해 시기를 합니다.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해도 그걸 믿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힘겹게 성공한 사례를 그리 많이 접하지 못하는 장삼이사들은 늘 패배의식에 절어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에 대한 인정과 존경보다는 시기와 질투와 모함을 하는 것이 세태입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도록 몰아가는 우리의 사회적 저류는 무엇일까요?
잘 사는 것이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권력을 많이 가졌고, ... 뭐 이런 것들로 정의되어 있는 것 때문은 아닐까요? 돈이 없더라도 고귀한 가치를 높이 사고, 고귀한 행동을 높이 치고, 이해와 양보를 미덕으로 삼은 그런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잘 사는 것이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잘 돌아가게 되어 있는 그런 삶이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로 충만한 사회가 잘 사는 사회가 아닐까요?
수위는 건물 경비에, 출입하는 사람관리에 힘을 쏟고 사소한 보안 사고라도 사전에 예측하고 방지하며 혹시 사고가 나더라도 피해를 최소하하고 상황을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역량과 준비태세가 되어 있으면 될 것입니다. 그것이 그 분들의 역할이라고 규정되어 있다면 그런 역할을 100% 수행하고 있는 수위 분들은 정말 잘 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끔 수위라는 직책을 가지고 수위로써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왜 나만 수위여야 하는지, 뭐가 못나서 내가 수위냐, 수위라고 뭐 못할 것 있냐 하는 이런 마음을 갖는 것 같습니다. 자기 아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역할과 임무에 대한 온전한 인정과 기대, 공존 뭐 이런 상식적인 선에서의 상호존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자신보다 잘 난 사람은 시기와 질시의 대상이며, "거꾸러뜨려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제가 수위라고 예를 든 것은 회사에 들락날락하며 가장 극명한 위치 대극점이 수위와 건물주 등으로 명확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점은 이러한 수위의 역할부정과 자기부정, 그리고 그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인정결여를 부추기는 원인이 건물주의 입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잘 난 것, 많이 가진 것 그거면 되는데 그것을 과시하고 그와 같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고 그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종업원, 직원, 사원, 하다못해 선후배로 서열이 갈라지는 학연, 지연 등등 그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한 사람, 서열이 낮은 사람이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상황은 없습니다. 그런 판국에 그냥 마음 편한 국민노릇 하기도 힘들다고 말해주니 그나마 속이 후련한 것입니다.
위정자들로 대변되는 책임자들은 잘 들어야 할 것입니다. 누구를 두고 이런 말이 나오는지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리더를 잘못 뽑아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삶의 질이 후퇴하는 것을 넘어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근간도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얘기합니다. 나라를 다스리기엔 너무나 철없는 (naive하다고 하기엔 너무 큰 중책을 맡고 있어 철없고 준비안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아 보입니다) 사람을 리더로 뽑은 국민의 수준을 탓해야 할까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부응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탓해야 할까요?
누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상황이 왔건, 그건 총체적 판단의 실수였고, 그런 실수를 만드는데 조금 더 기여한 사람들이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머리에 얼음팩을 얹어놓고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국부의 후퇴 뿐 아니라 국민의 우민화, 공산화, 사회주의화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고민정도로 문제가 해결이 안될까 그게 걱정입니다.
어떻게 매듭을 풀어나가야 할 지 함께 생각하고, 이제는 앞으로만 가는 locomotive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국민의 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잘 난 사람들이 잘 난 만큼 더욱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못난 사람들도 나름대로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회란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역할만으로 구분되는 role-based society가 되도록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많이 벌고 적게 벌고가 아니라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로 사람됨을 평가하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상식에 벗어나지 않는 역할만 해도 제대로 살 수 있는 그런 사회, 그런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그냥 각자의 위치에서 잘 사는 것, 그것이 국민노릇인 그런 나라에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