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상생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
친구가 강남 가면 나는 어디로 가나...
자고로 탓을 잘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의식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무엇이든 나로부터 시작되고, 어떤 결과든 내 손을 거친 것이면 그 책임도 내게 있는 것이다. 내 책임이 직접적으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조직적으로 져야 하는 관계에 있다면 먼저 내 책임임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잘잘못을 따지는 책임이어도 그렇고, 구태여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책임자급이고, 내가 상급자이고, 내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 자리에 있다면 당연히 그 책임을 먼저 내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에는 잘 된 것은 내 공이고, 잘못된 것은 모두 남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강하다. 한 때, '지위지대'를 이용한 금품갈취, 촌지수수, 성상납 등 수많은 불법 탈법이 횡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진행 중일 것이다. 이제, 그 지위지대의 적용을 긍정적인 면으로 돌려야 한다.
내가 이런 지위에 있으니, 난 이 정도의 사회적 책임과 도의적 예절과 공중도덕적 겸양과 양보, 그리고 사회적 조직적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가다듬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지위가 높아질수록, 책임이 커질수록 예외가 되고, 책임을 면하게 되고, 특별대우를 받고 싶어 하고, 뭔가 다르게 예우받기를 원하고, 난 너희들과 달라 라고 하는 차별화를 원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남과 다르기 때문에 더욱 더 허물없이 어울리고, 남보다 잘났기에 덜 난 사람들 속에서 같이 부대낄 줄 알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힘과 권력, 부를 가졌기에 더 많은 양보와 겸양을 해도 잃을 것이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명백한 사실을 너무도 태연하게 잊고 사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닐까?
어느 정도의 부와 권력과 지위가 이런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수행할 그룹에 들게 하는 걸까? 반드시 부와 명예만이 그 기준일까? 예의는? 공중도덕은? 질서의식은? 성숙한 시민의식은?
교육받은 정도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상생지수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결코 뒤질 게 없다고 본다. 굳이 교육열로만 보지 않고 가족간의 끈끈한 사랑만 놓고 보아도 마찬가지다. 한민족 한민족 말은 번지르르 하게 하면서 중요한 때엔 완전한 남남이 된다. 자기 자신과 가족들에 쏟는 열정과 사랑의 반 만 자기 외의 외부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아량만 있어도 훨씬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렸다. 바로, "내 마음이 부처"인 것이다. 이제 너도 살고 나도 살고, 우리 모두가 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상생의 세상을 나로부터 시작하게 해보자. 내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상생의 세상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