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과 노블리스 오블리쥬
대한민국의 부와 부동산은 거의 5% 미만의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되었다. 서울시 사유 부동산의 40% 이상이 1%인가의 극소수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독과점 자본주의의 시대인 것이다.
사실 우리가 문제를 삼는 것은 누가 얼마를 가졌고, 누가 얼마를 버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고 벌고 있는 사람들을 Noble class로 분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지는 단편적인 소식이나 소문을 통해 듣게 되는 적나라한 단면들은 그런 소신을 갖기가 참 어려워지는 상황이 많다. 더 기본적으로는, 과연 우리 사회에 품격과 품위와 권능과 소신을 가진 선비 또는 귀족에 해당하는 층이 존재하느냐 하는 화두를 던질 수 있다.
재벌끼리의 족혼, 고위관료끼리의 내혼, 재벌과 관료의 정략혼, 졸부들의 짝짓기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어느 틀 안에 자의적으로 규정해 놓고 그 틀 내에서 기반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틀이라는 인위적 장막, 보이지 않는 계층간의 벽을 허물 생각은커녕 더욱 두터운 덧칠을 하지 못해 안달을 한다.
부와 권력과 권위와 재산의 독과점을 넘어 독점을 향해 나아가는 군상들을 보며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 내가 느끼는 그들의 행태는 본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왜 우리 사회에는 존경받는 선배가 없으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엄을 부여하고 싶은 그런 리더도 없는가? 왜 우리는 스스로 받은 감동으로 인해 어떤 사람 어떤 제도 어떤 시스템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숭앙하고 본받자고 핏대를 올리는 사람이 없는 걸까?
기득권자들의 진정에 찬 권리포기 이익양도 혜택공유 사회를 위한 공헌 자선 기부 공동체건설을 위한 자주적 지도력 발휘 등등 이런 모델이 나오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강요에 의한 희생이 아니라 자발적인 돌봄과 나눔의 생활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핍박받고 고통받고 인내만 강요당하기 때문은 아닐까?
5%를 위한 부와 권력의 집중인가? 95%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다원화 사회의 공동체 건설인가?
나는 기득권자들의 양보와 자비로움을 바탕에 둔 '노블리스 오블리쥬'가 한국사회에 걸맞는 문화로 자리잡게 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처절하게 소망한다.
상생의 공동사회 건설을 위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전제조건이 기득권자들의 양보, 내지는 포기다.
(이종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