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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 굼벵이 - 자전적 이야기

태정 (泰亭) 2006. 3. 19. 23:27

굼벵이는 느리다.  

굼벵이는 꿈틀거리며 걷는다.

산보를 해도 속보를 해도 그게 그거다. 

그러나 잠시 한 눈을 팔면 생각보다 멀리 가 있다.

끊임없이 목적지를 향해 간다.

그 작은 체구에 목표가 보일 리 없다고 생각되건만 어디론가 계속 간다.

그래서 굼벵이는 부지런함의 상징이다.

변화없음의 표상이다. 

도를 벗어나지 않는 일상이다.

틀을 깨지 않는 상식이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자아사랑의 대명사다.

불평하지 않는 평상심의 표본이다.

찡그린 얼굴 표정도,

째려보는 눈의 일그러짐도, 

짐짓 태연한 척 하는 헛기침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전신을 최고로 오므렸다 펴는

굴신을 통해 전진한다.

주름 하나 하나에 혼신의 힘을 담아

용수철처럼 튕겨 나가듯이 걷는다.

혼이 담긴 프로정신을 본다.  

굼벵이는 굼벵이 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통통거리며 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렇게 느껴진다.

웃는 얼굴을 보는 것 같다.

활짝 웃으며 인사하는 것 같다.

악수를 청하고 "먼저 갈게요" 하는 것 같다.

주변 시선에 아랑곳 없이 자기 기분대로 움직인다.  

그런데 전혀 밉지 않다.

주름살을 통해 전해지는 미소와 겸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볼록 볼록 잘록잘록

자동 태엽처럼

용수철처럼

잘도 간다.

 

구르는 굼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