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정루 탄금대

태정, 할어버지의 선물

태정 (泰亭) 2006. 3. 15. 22:17

泰亭, 큰 정자라는 뜻이죠.

저의 본명인 李鍾瑛에 태어난 생년월일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운과 획수를 가진 한자를 찾고 찾아 생전에 저의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호입니다.

 

서울에서 시골로 놀러갔다가 어느 하루 오후에 잘 잘라낸 편지지 겉장에 <종영의 號>라고 쓰신 후 여러가지 숫자를 쓰고 맞추시며 <리태정>으로 정해주신 것입니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으나 1990-1993년 사이이며, 약간은 편찮으신 가운데 세상을 뜨시기 전에 손자를 위해 해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이 호의 출처를 굳이 블로그에 밝히는 이유는, 1994년 음력 설 오후 3시 45분경에 별세하신 할아버지가 자꾸 보고싶기 때문입니다. 증손자 안아보시는게 평생 소원이셨는데 그것마저 들어드리지 못하다가 돌아가신 지 2년만에 겨우 신고드린 불효막심함을 안고 살죠.

 

이제 11살이 된 아이와 같이 시골에 가면 그런 내막을 모르는 아이에게 설명을 하고 집 바로 옆(직선 거리로 채 100미터가 안되어요)에 있는 증조부 산소에 데리고 갑니다.

 

호를 지어주신 이후 별로 사용하지 않다가, 어느 책에서 "큰 나무가 되라. 많은 사람들이 무더운 여름에 그늘에서 편히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런 큰 나무가 되어라"는 문구를 보고, 저의 호를 가급적 자주 사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음의 크기도, 도량의 넓이도, 지식의 폭도, 지혜의 틀도 아직 그 가까이 가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께서 제게 남겨주신 그 크고 깊은 사랑만큼은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답니다.

 

이 글을 읽게 되신 여러분께서도 혹여 조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신다면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버이 살아실제 효도일랑 다하여라"는 옛말이 너무도 명언스럽습니다. 추사 김정희 님의 '세한도'엔가 보면 "세한연후에 소나무의 푸르름을 더욱 크게 느낀다"는 문구가 있을 것입니다. 이는 바로 부모, 조부모님의 자식 손자 사랑을 여지없이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도 돌아가신 연후에나 그런 것을 깨닫게 되는 불효까지 더해서...

 

아직 모자라는 것이 너무 많은 저이지만, 태정이 갖는 의미와 태정이 주고자 하는 의미와 태정을 통해 제가 이루고자 하는 많은 염원이 있기에 늘 미래를 생각하며 좋은 뜻을 품고 되도록 올바른 생활을 영위해나가는 숨은 힘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향을 가지고 있고 고향에 연민을 가진 사람, 조부모님을 포함한 대가족이 같이 어울려 사는 가정, 그리고 자신의 모자람에 대해 언제나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그런 분들이 좋습니다.

 

저도 그런 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것을 다시 한 번 더 다짐하며, <태정>이란 큰 뜻을 저의 가슴에 되새길 수 있도록 호로 지어주신 할아버지의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종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