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오래 전 방송을 보며 몇자 메모했던 것을 그대로 옮겨 놓습니다. 전체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겠다 싶습니다만, 정확하게 그 프로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완전하게 옮겨놓지 못해 아쉽습니다...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SBS TV 2009년 11월 8일
거기에 있는 이유가 있었다
풍수를 알고 미래의 불안을 알고 나서야 왕릉이 왜 거기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동기감응에 의한 후손 돌보기 원칙에 따라 터를 잡고 왕릉을 모셨다. 상계, 중계, 하계 – 문인석과 무인석이 있는 하계. 문인석은 왕릉에만 있다.
건원릉(동구릉의 시작), 정릉(11대 중종), 광릉(세조). 정릉(태조 계비(강비)릉). ((조선 왕릉 42기는))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한양 십리 밖 백리 안에 왕릉 조성. 정조 – “이제부터는 수원을 80이라 명하노라.”
헌릉, 태종이 스스로 자리를 잡았다. 대모산 자락 맞은 편.
김두규 교수, 우석대학교 풍수학. 권력과 풍수. 목효지 – 역풍수: 장자 장손이 일찍 죽는다는 상소를 함. 관우물지. 세종 23년 단종 탄생. 그 다음날 빈궁 사망. 바닷가에 명당 없다. 손이 끊어지고 맏아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최양선의 상소. 세종이 사후에 태종 곁에 묻히겠다는 것을 반대한 것.
경복궁보다 정독도서관 자리가 정혈. 이현로의 상소. 수양대군이 내침. 정룡이 잘못되된다는 상소를 함. 모두 세조의 즉위 후 효수, 교수형에 처해짐. 세조만 빼놓고 20년 동안 자손이 안생김. 세조 자신은 아니지만 맏아들인 의경세자 돌연사. 직접 5번 답사 다닌 끝에 의경세자 장지 선정. 봉분의 지름이 가장 큼. 서오릉의 시작. 이날 단종은 세상을 떠남. 나이 18세. 엄홍도가 암장 – 장릉. 사릉은 단종비 정순왕후 능. 능묘를 석실로 하지말고 회를 사용하라. 태조부터 석실로 해온 전통을 세조가 바꿈. 광릉이 건원릉보다 더 윗줄기에 위치. 발복을 더 빠르게 하기 위한 것. 속성발복의 얘기가 된다.
회룡고조의 영릉. 명당. 연산군의 이복동생 정릉.
정조는 즉위시 효장세자의 양아들이 아니라 사도세자의 아들이라 천명한다.
왕의 생기발복 천광의 깊이는 열자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을 모시며 구수원을 지금의 팔달산 아래 화성으로 옮겼다.
이후 모든 왕들은 사도세자의 자손들이었다.
영조계비 정순왕후는 정조의 능 자리로 군기고 자리를 택했다. 그러나 정순왕후 사후 천장했다. 그러나 조선은 정조 이후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26대 고종은 황제 능의 조형물도 완연히 다르다. 그러나 길지인지는 모른다. 조선풍수에 따르면 길지라고 되어 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27대 순종의 자리는 과혈자리. 생기가 모이지 않고 흘러가버리는 자리. 그러나 조선풍수의 저자인 일본인은 오히려 홍릉보다 더 좋다고 보았다.
조선왕릉은 오픈 뮤지엄. 그 안에 교육 복식 문화 등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광릉의 경우 문화유산과 생물유산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흉지 길지 논란은 역사를 되돌아보기 위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