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에서 송년 세리머니를 하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한 시간 정도 달려 도봉산역에 내린 것이 9시 45분. 탐사센터에서 모두 모여 10시 16분 출발. 그리곤 포대정상까지 약 4Km에 걸친 산행, 출발지점까지 치면 8Km 정도의 길을 걷고난 후 새조개전문점에 여장을 푼 것이 4시 45분. 그리 멀지 않은 길을 거의 6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1시 정도에 시작한 눈발이 시간이 갈수록 더 멋지게 변하고 온통 새하얀 세상으로 변하는 모습을 눈에 찍으며 엄청 신명난 산행을 했습니다. 산행을 하며 내리는 눈을 맞는 것이 그리 흔하지 않기에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게 해주시는 자연께 감사드리며, 경인년 새해도 멋있게 다가오기를 마음 속으로 염원해보았습니다. 내려와보니 눈이 제법 많이 왔더군요. 오히려 산 속에서 맞은 눈은 기온이 차서 그런지 거의 싸래기 눈처럼 보였거든요. (도봉탐방지원센터 -> 광륜사 -> 은석암 -> 다락능선 -> 포대정상 -> 도봉주능선 -> 우이암길에서 꺾어져 하산)
함께 한 다섯 친구들은 강남, 강북, 대전에서 모인 대학 써클 선후배 사이입니다. 더 많은 꾼들이 같이 자리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조촐하면서도 돈독하게 사고없이 Y능선과 기타 암벽들을 잘 타고 내려왔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산을 타는 바람에 초기부터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6.5Km 지점에 무릎에 이상이 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1989년에 사용하고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두건형 등산모도 써보고, 작년 겨울 끝날 때 쯤 샀던 아이젠도 처음 사용해보고, 그리고 무릎보호용 아대도 산지 3년만에 처음 사용해보았습니다. 아대, 아주 효과적이었구요, 신발에 덧버선을 신는 것처럼 해서 발바닥을 온전히 둘러싸게 만들어진 아이젠도 정말 편안하면서도 효과적이었습니다. 다만 추울까봐 너무 껴입은 옷 때문에 약간 불편하기는 했지만 영하 7-8도의 강추위가 별로 춥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훈훈한 산행을 했습니다. 정상까지 가면서 맞은 편으로 보이는 망월사가 참 적막하면서도 기품있게 보였습니다. 저런 곳에서 심신을 닦는다면 어느 경지까지는 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절이 고려 말부터 있었던 모양입니다...)
같이 산을 탄 친구들의 마음도 그렇고, 우리를 반기는 하얀 눈도 그렇고, 언제나 변함없이 맞아주는 자연도 그렇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도 얼굴하나 붉힘 없이 순조롭게 그 비좁은 길을 양보하며 지나다닐 수 있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경인년 한해를 순탄하고 강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징조 같습니다. 특히, 산행 후 맛본 '새조개 샤브샤브'는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것이 겨울철 별미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새조개 샤브샤브도 난생 처음 먹어보았습니다. 천수만에서 잡은, 겨울에만 난다는 새조개는 알맹이가 새처럼 생겼다고 해 그렇게 이름이 붙었답니다.
사진으로나마 제가 오늘 다녀 온 등산로의 풍경을 옮겨 봅니다. 마지막 사진 두 장은 겨울 산행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괴짜들이라 실례를 무릅쓰고 찍어 올렸습니다. 고무신 신운 분은 자운봉에서 막걸리를 파는 분인데 오늘 같은 추위에 고무신에 맨발로 장갑도 안찌고 막걸리를 팔고 계셨습니다. 도봉산 기인이라고 하데요. 텔레비전에도 나오신 분이랍니다. 그리고, 막걸리 파는 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웅성이고 있는데 나시 바람으로 나타나신 이분, 뭇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휘이휘이 갈 길을 갔습니다. 부럽다 못해 시기심이 생기더군요 :-)
탐사센처로 가기 전 주차장 쪽에서 오늘의 목표지를 잡아 보았습니다.
포대정상에 다다르기 조금 전에 찍은 선인봉(708m), 만장봉(718m), 자운봉(740m)의 모습입니다.
자태가 너무 아름다워 계속 찍게 되었습니다.
포대정상으로 가면서 바라본 반대편도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도봉산을 지키는 봉우리 3형제가 아주 멋있게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자운봉만 확 댕겨 보았습니다. 다 내려와서 보니, 이 봉우리는 탐사센터 근처 공원에도 모형이 만들어져 있더군요.
이건 신기한 것도 아니고, 처참한 것도 아니고, 기괴한 거죠?
햐, 이 양반 뭇사람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했습니다. 그럴만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