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릉[태종대왕릉]에서 ...
성남 세곡동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 3대 태종대왕(1367-1422; 재위 1400-1418)의 獻陵에서 내려다 본 경관입니다. 바로 앞에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정자각이고, 옆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비각입니다. 헌릉은 태종과 그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쌍봉 능으로 사적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CYON LG-SV900으로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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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년 한반도 역사에서 몇 차례 없었던 왕조 교체라는 거대한 권력투쟁의 한복판에 그가 있었다.
군신공치의 이상을 앞세운 정도전 세력과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서 승리하고 조선을 왕권 중심의 나라로 틀 잡은 것도 그다...
조선 500년을 통치한 27명의 국왕 중에서 흔히 이방원으로 불리는 태종만큼 호모 폴리티쿠스의 이상에 충실했던 임금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열정과 냉정을 고루 갖춘 인물. 태종은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세 사람의 카리스마를 모두 합친 것 이상의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나라 사랑과 백성 사랑은 세종대왕을 제외한다면 어느 국왕도 따라가기 힘들다... 그에게서 적어도 난세를 치세로 바꿔놓은 지혜는 배워야 한다. 거기에는 나라의 장래에 대한 원대한 구상과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와 추진력이 핵심이다. 멸사봉공과 성심집중, 태종이 사람을 대하고 일을 만들어가는 태도는 이 여덟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 난세의 혁명가에서 위대한 군주로, 현실정치가 태종을 만난다 해냄 출판사, 이한우의 군주열전 들어가는 글에서 군데 군데 발췌
[헌릉 소개 리프렛 내용]
조선 제3대 태종과 그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능이다.
태종(1367-1422, 재위: 1400-1418)은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함흥 귀주동 사저에서 탄생하였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워 정안군으로 봉해졌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의 난을 주도적으로 평정하였으며 1400년(정종 2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같은 해 왕위를 이어받아 개경 수창궁에서 즉위하였다.
태종 5년 (1405)에 창덕궁이 완공됨에 따라 개경에서 한양으로 다시 천도하였다. 18년간의 재위 기간에는 관제의 개혁, 신문고의 설치, 호패법 실시, 조세제도의 정비, 국방강화를 위한 군사제도의 혁신 등 조선왕조의 기반을 닦는 데 많은 치적을 남겼다.
1418년에는 세종에게 양위하고 1422년 수강궁에서 승하하였다.
원경왕후(1365-1420)는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로 1365년(고려 공민왕 14년)에 탄생하여 1383년에 가례를 올렸다.
태조 즉위년인 1392년에 정령옹주로 봉해졌고, 태종이 즉위한 후 왕비로 책봉되었다. 1420년에 수강궁(현 창경궁) 별전에서 승하하였다.
능제는 태조의 느인 건원릉 형식에 따라 조영한 동원쌍봉릉으로 조선 초기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봉분의 병풍석에는 와형온문 속에 수관신인을 조각하였고, 아래 부분에는 영지를 윗부분에는 영저를, 좌측에는 영탁을 새겼다.
둘째, 조선왕조 왕릉의 신도비는 건원릉과 헌릉에만 보인다.
셋째, 유교사상에 따라 불교적인 제도를 폐지하고 왕과 왕비의 능을 나란히 배치한 쌍분으로 조영하였고, 망주석을 제외한 모든 석물은 각 2쌍씩 배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