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정루 탄금대

Down With Love: 인내와 기지로 사랑을 정복하다

태정 (泰亭) 2006. 11. 4. 23:46

Down with Love. 우리 말로 풀면 '사랑은 무슨 말라 비틀어진 사랑' '사랑이라고라고나?' '사랑 나부랭이, 씨를 말려버려' '사랑 타도' '사랑이여 이제 그만' 정도로 풀 수 있지 않을까?

 

1987년 독재정권에 맞서 일어났던 요원의 들불, 민주화 운동 때 가장 많이 나왔던 구호가 '독재타도'였는데, 그걸 영어로 옮기면 "Down with the dictatorship"이었다. 그리고 "독재자의 각을 뜨자"는 무시무시한 말도 있었는데 이는 "Skin the dictator"였다. 하지만 외신 기사에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군부독재' 즉 military dictatorship이었다.

 

'다운 위드 러브'라는 영화 제목을 보며 20년 전 몸담았던 그 가열찬 취재현장이 생각난 것은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온 르네 젤위거의 사랑 쟁취기가 그만큼 눈물겹고 가슴 뭉클하게 하기 때문이다. 얼굴이 못생겨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거들떠보임도 당하지 않았던 여인.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기자의 비서로 들어가 사랑을 느끼고 고백을 했으나 그 남자의 코뺑이도 건드리지 못한 여인. 

 

그런데 그녀는 이름을 바꾸고, 뭔가 이름을 낼 수 있는 일을 벌이기로 작정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바로 소설가로 변신하여 내 논 책이 'Down With Love.' 세상의 모든 고난에 찬, 사랑의 열병때문에 인생을 포기한, 그리고 좀 잘난 남자라면 사족을 못쓰고 매달리던, 무엇보다 남자가 아니면 자기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동등한 반쪽이 아니라 영원한 약자로, 햇볕이 들지 않는 반대 편에 주로 서 있던, .... 이런 다양한 여성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스스로의 존엄을 찾게 해주는 책. 한편으로는 얼굴이 잘 생겨, 돈이 많아, 힘이 세서, 지위가 높아 여자들한테 인기가 좋았던 남자들에게는 보기 좋게 한 방 먹이는 책.

 

바바라 노박이 이렇게까지 유명해지자 잡지사 최고 기자인 이안 맥거리거는 그녀를 취재하려 들고, 마침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 바람둥이 기자는 아침 약속에서 점심으로 미루고, 또 저녁으로 미루고, 그리고는 그 다음 아침까지 미루는 극도의 무례함을 저지르는데... 드디어 화가 난 르네는 그렇담 나도 가만 있지 못하지, 내가 누군데 하는 오기로 맞서게 된다. (이 과정이 참 재미있게 전개됩니다.)

 

하지만 이안 맥거리거의 목표는 기사로 뿐만 아니라 여자로 르네를 정복하겠다는 야심/야망을 키우고 슬슬 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르네는 이미 이 꼼수를 간파하고 애만 타게 만들고는 아무 일도 만들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이렇게 사랑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정말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여성사회의 리더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주인공 '바바라 노박'이 '사랑을 거부한다'는 이 책에서 주장한 것은, 여성도 결혼에만 얽매이지 말고 사회적 성공을 위해 노력하며, 섹스는 즐기되 사랑에는 빠지지 말자고 선동하는 도전적인 여성의 삶이다. 꼭 그 주장이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여성이 여성으로서 자신의 세계를 가꿔나가자는 주장은 모든 여성들의 공감을 받는다. 물론, 영화 속의 남성들이야 말도 안되는 주장으로 치부하지만.

 

클라이맥스에서 보여주는 르네 젤위거의 여성적 전환, 즉 여성의 리더가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여성임을 선언하는 장면은 참 아름답다. 여성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는 여성으로서의 자기 모습과 일과 사회활동을 통해 자신의 성취동기를 충족하는 전문가로서의 모습을 동시에 갖춰나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결국 그렇게 오매갈망하던 이완 맥거리거의 사랑을 얻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는 르네가 사랑을 찾아갔지만, 결국 엔딩은 이완이 르네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어 대기자 직을 버리고 그녀의 비서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사랑을 완성시키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로맨틱 섹시 코미디라고 소개는 되어 있지만 눈요기 하나 없는 이 영화를 기억에 남게 하는 것은 물론 르네 젤위거의 매력 그 자체이지만, 그녀가 입고 나오는 화려한 의상은 정말 패션쇼를 무색하게 하며, 그녀의 섹시한 페미니스트로서의 설정을 더욱 광채나게 한다. 핸섬한 플레이보이 저널리스트로 나오는 이완은 사실 내가 보기엔 약간 덜떨어진, 자기멋에 푹 빠져 제맛대로 노는 '놈팽이'에 불과한데 그럼에도 르네가  그렇게 좇아다녔다면 이유는 핸섬한데다 너무 유명한 기자였기 때문이었을까?

 

 

남자친구로부터 이유없이 서운함 같은 것을 느낀다면 이 영화를 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유없이 여자친구를 박대하고 있다면 이 영화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같이 노력하면 뭔가 좋은 결과/결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르네 젤위거는 왜 그렇게 친근하고, 이쁜거죠? 인내와 기지로 사랑을 정복한 그녀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